"권태준 청년의 고백"
내가 기억하는
교회와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때였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정문에서 간식과
전도지를 나눠주며
전도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나 역시 다른 아이들처럼
간식과 전도지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엄마는
다시는 이런 것
받아오지 말라고
크게 화를 내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애써
교회를 피하는 삶을 살아왔다.
중학교 학원 선생님을 통해,
스쳐 간
고등학교 친구들을 통해,
그리고 군대 동기를 통해
교회에 가게 될 일이
몇 번 있었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겠다’는 생각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한편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좋으신 엄마 말씀대로,
공부 하나만 잘해서
어떻게든 취업 잘 된다는
학과에 입학은 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았던
나의 운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높은 곳만 바라보게 되었고,
3년 동안 취업 준비에
연속으로 실패하면서
자존감은 낮아져 갔다.
그러다가
희주를 알게 되면서
나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희주에게는
그때의 나에게선 찾을 수 없는
삶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살 수 없는 그 삶을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투 섞인 궁금증은
나를 교회로 이끌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나와 전혀 관련이 없던
용인으로 오게 하셔서
수지산성교회를 다니게 하시고
용인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게 하셨다.
기드온성경대학과
성경대학원을 수강하고,
근무가 없는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고,
성가대원의 직분을 감당하면서
나의 삶이
결국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주의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함께하셨기에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와 감사를
감히 드리게 되었다.
주일성수를 할 수 없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더욱 힘들어지기도 했다.
결국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오래지 않아
나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분야의 회사에
재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사히 새로운 직장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자,
엄마와의 관계가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통해
처음으로
성가대원 직분의 기쁨을,
교회에 다니는
기쁨에 대해 고백했을 때
돌아온 것은
‘그만 이야기하라’는
엄마의 비명과 오열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빠와의 통화를 통해
엄마가 불교를
믿어왔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듣게 되었다.
그 후로 가족들과는
신앙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명목 아래
종교 이야기를 금기시하며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믿지 않는 가족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기를
깊이 바라며
매일 기도한다.
아직도 나에게는
엄마의 마음을 열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작은 고난이 남아있다.
지금 예수님의 사랑이 있음을
굳게 믿는 나에게는
이 고난이 두렵지 않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고난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영광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기억하고
온 힘을 다해
헌신하며 살기로 다짐한다.
나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권태준 청년의 고백"
내가 기억하는
교회와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때였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정문에서 간식과
전도지를 나눠주며
전도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나 역시 다른 아이들처럼
간식과 전도지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엄마는
다시는 이런 것
받아오지 말라고
크게 화를 내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애써
교회를 피하는 삶을 살아왔다.
중학교 학원 선생님을 통해,
스쳐 간
고등학교 친구들을 통해,
그리고 군대 동기를 통해
교회에 가게 될 일이
몇 번 있었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겠다’는 생각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한편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좋으신 엄마 말씀대로,
공부 하나만 잘해서
어떻게든 취업 잘 된다는
학과에 입학은 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았던
나의 운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높은 곳만 바라보게 되었고,
3년 동안 취업 준비에
연속으로 실패하면서
자존감은 낮아져 갔다.
그러다가
희주를 알게 되면서
나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희주에게는
그때의 나에게선 찾을 수 없는
삶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살 수 없는 그 삶을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투 섞인 궁금증은
나를 교회로 이끌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나와 전혀 관련이 없던
용인으로 오게 하셔서
수지산성교회를 다니게 하시고
용인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게 하셨다.
기드온성경대학과
성경대학원을 수강하고,
근무가 없는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고,
성가대원의 직분을 감당하면서
나의 삶이
결국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주의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함께하셨기에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와 감사를
감히 드리게 되었다.
주일성수를 할 수 없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더욱 힘들어지기도 했다.
결국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오래지 않아
나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분야의 회사에
재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사히 새로운 직장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자,
엄마와의 관계가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통해
처음으로
성가대원 직분의 기쁨을,
교회에 다니는
기쁨에 대해 고백했을 때
돌아온 것은
‘그만 이야기하라’는
엄마의 비명과 오열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빠와의 통화를 통해
엄마가 불교를
믿어왔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듣게 되었다.
그 후로 가족들과는
신앙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명목 아래
종교 이야기를 금기시하며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믿지 않는 가족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기를
깊이 바라며
매일 기도한다.
아직도 나에게는
엄마의 마음을 열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작은 고난이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예수님의 사랑이 있음을
굳게 믿는 나에게는
이 고난이 두렵지 않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고난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영광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기억하고
온 힘을 다해
헌신하며 살기로 다짐한다.
나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