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권사의 고백"
시댁은 유교사상이 깊어
제사를 매우 중요시하는 집안이었습니다.
런 집안에서 저도 함께
정성껏 상 차리며 ‘잘했다.’
칭찬받기를 기뻐했고 즐거워했었습니다.
그러던
1997년도에 매화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수지산성교회 기드온성경대학을
권유받았습니다.
예의상 ‘한번 들어주고 끝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듣기 시작했던
강의를 시작으로
그 다음 해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현실을 피할 수 없어 괴로운 마음에
정말 많은 날들을
기도와 눈물로 보냈습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인정에 호소하며
제사를 피하기도 하고
맞서 보려고도 했지만
번번이 나의 나약함과 두려움에
넘어지기 일쑤였고,
역으로 시어머니는 저에게
제발 아무 탈 없이 지나가기를
사정하기도 하셨습니다.
저를 정말 귀히 여겨주시는
착한 시부모님과 어른들 때문에
저의 담대함은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필리핀 선교를 오랜만에
가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평소에 지병을 앓고 있던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게 되었고
저는 급히 선교 일정 도중에
혼자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로부터
그동안 앓고 있던 제사 문제가
하나씩 척척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장남 장손의 하나뿐인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장례식을 발인밖에
참석하지 못 했는데도
저를 책망하시기는커녕
‘급히 오느라 고생했다’ 하시며
저에게 장례 이후의 생각을
먼저 물으시고
‘원하는 대로 하라’ 하시더니
장례가 끝난 이후에는
여러 친지들에게
‘앞으로는 민지 엄마에게
제사 얘기 꺼내지 말라’ 하시며
‘제사 문제로 힘들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로 시할머니, 할아버지 제사까지
끊어내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되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며
마냥 신기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인들이 나서서
일이 해결되었고
어른들께도 좋은 모습으로 좋은 결과로
마무리 지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구나.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일하심이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역시 살아 역사하시는
나의 하나님,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주신 말씀을
경험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는
남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어른들은
필리핀 선교에 참석한
저의 모습을 보며
제가 믿음이 견고한 사람인 줄 알고
미리 의논하셔서
제사와 관련해 타협이 안될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리석고 용기 없는 저를
너무나 잘 아셔서
저를 필리핀에 있게 하셨고
제가 없는 가운데
제사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이후로도 매일매일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늘 제자리걸음만 하
제가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좀 더 성숙한
아버지의 자녀가 되도록
남편과 친정,
시댁의 영혼구원을 위해
더 많이 울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김진희 권사의 고백"
시댁은 유교사상이 깊어
제사를 매우 중요시하는 집안이었습니다.
런 집안에서 저도 함께
정성껏 상 차리며 ‘잘했다.’
칭찬받기를 기뻐했고 즐거워했었습니다.
그러던
1997년도에 매화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수지산성교회 기드온성경대학을
권유받았습니다.
예의상 ‘한번 들어주고 끝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듣기 시작했던
강의를 시작으로
그 다음 해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현실을 피할 수 없어 괴로운 마음에
정말 많은 날들을
기도와 눈물로 보냈습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인정에 호소하며
제사를 피하기도 하고
맞서 보려고도 했지만
번번이 나의 나약함과 두려움에
넘어지기 일쑤였고,
역으로 시어머니는 저에게
제발 아무 탈 없이 지나가기를
사정하기도 하셨습니다.
저를 정말 귀히 여겨주시는
착한 시부모님과 어른들 때문에
저의 담대함은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필리핀 선교를 오랜만에
가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평소에 지병을 앓고 있던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게 되었고
저는 급히 선교 일정 도중에
혼자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로부터
그동안 앓고 있던 제사 문제가
하나씩 척척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장남 장손의 하나뿐인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장례식을 발인밖에
참석하지 못 했는데도
저를 책망하시기는커녕
‘급히 오느라 고생했다’ 하시며
저에게 장례 이후의 생각을
먼저 물으시고
‘원하는 대로 하라’ 하시더니
장례가 끝난 이후에는
여러 친지들에게
‘앞으로는 민지 엄마에게
제사 얘기 꺼내지 말라’ 하시며
‘제사 문제로 힘들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로 시할머니, 할아버지 제사까지
끊어내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되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며
마냥 신기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인들이 나서서
일이 해결되었고
어른들께도 좋은 모습으로 좋은 결과로
마무리 지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구나.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일하심이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역시 살아 역사하시는
나의 하나님,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나의 하나님,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주신 말씀을
경험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는
남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어른들은
필리핀 선교에 참석한
저의 모습을 보며
제가 믿음이 견고한 사람인 줄 알고
미리 의논하셔서
제사와 관련해 타협이 안될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리석고 용기 없는 저를
너무나 잘 아셔서
저를 필리핀에 있게 하셨고
제가 없는 가운데
제사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이후로도 매일매일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늘 제자리걸음만 하
제가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좀 더 성숙한
아버지의 자녀가 되도록
남편과 친정,
시댁의 영혼구원을 위해
더 많이 울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