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옥 전도사의 고백"
돈암동 성결교회!
나지막한 야산을 가로질러 어릴 때부터 우리 사남매가 다녔던 교회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명륜교회를 다녔고 우리는 집 가까운 교회를 다닌 것이다.
선교원을 겸하고 있던 터라 각종 놀이시설이 갖추어져 있던 교회는
어릴 때부터 놀이터 겸 예배당이 되어 학교 외의 모든 삶은 늘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어릴 땐 여름성경학교, 학생 땐 수련회와 문학의 밤,
크리스마스 겨울밤의 새벽송 등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추억이 있고,
그 당시 성결교회끼리 연합이 잘 되어
함께 체육대회, 성경암송대회, 찬양경연대회 등을 개최하여 참가한 기억도 있다.
남편 왕경호 장로를 만나
결혼식도 이곳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의 주례로 치렀고
그때 권사님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맛난 잔치국수의 그 맛이 지금도 그립다.
성가대에서 오랫동안 찬양으로 헌신하면서,
음치인 남편이 차마 성가대를 할 수 없어
(서울대 음대 교수님이 지휘를 맡으셨던 수준 높은 성가대였다.)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이 안타까우셨는지
명예성가대원 임명장을 수여하여 지금도 간직하여 자랑하고 있다.
집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정든 교회를 뒤로하고
안양(평촌)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겸이를 낳아
관양제일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2년 정도 살다가 드디어 분당의 매화마을에 벽산빌라를 분양받아
이사하게 되었고 당시 직장생활을 했던 때라
한겸이를 맡길 선교원이 있는 교회를 찾아다니다
여의치 않아 집 앞 가까운 교회에 나간 것이 산성교회였던 것이다.
상가교회는 여러모로 염두에도 두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교회는 어릴 때부터 다녀서 신앙양심은 있었기에
직장생활 핑계로 간신히 주일만 지키는 믿음에 늘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이로 인해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경험도 없던 우리가
말씀을 들으며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고 성령체험하면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주일은 물론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에
GBC, GBS 말씀 과정까지 모두 성공하여 진정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하며 기도하다
“너처럼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나의 사랑을 전해줄래?” 하시는 음성을 듣고
즉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나 같은 사람을 건지기 위해
전도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부족한 자가 전도사가 되어
지금껏 쓰임 받고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항상 묵묵히 헌신하며 나아가는 남편 왕경호 장로와
작년에 사랑스러운 가정을 이룬 아들 내외를 보며
더욱 감사의 조건이 차고 넘침을 보게 된다.
또 귀한 사돈과의 만남도 허락해 주셨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지금까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해 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더 많은 것을 받았으니
더 많이 감사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늘 마음에 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나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양혜옥 전도사의 고백"
돈암동 성결교회!
나지막한 야산을 가로질러 어릴 때부터 우리 사남매가 다녔던 교회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명륜교회를 다녔고 우리는 집 가까운 교회를 다닌 것이다.
선교원을 겸하고 있던 터라 각종 놀이시설이 갖추어져 있던 교회는
어릴 때부터 놀이터 겸 예배당이 되어 학교 외의 모든 삶은 늘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어릴 땐 여름성경학교, 학생 땐 수련회와 문학의 밤,
크리스마스 겨울밤의 새벽송 등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추억이 있고,
그 당시 성결교회끼리 연합이 잘 되어
함께 체육대회, 성경암송대회, 찬양경연대회 등을 개최하여 참가한 기억도 있다.
남편 왕경호 장로를 만나
결혼식도 이곳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의 주례로 치렀고
그때 권사님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맛난 잔치국수의 그 맛이 지금도 그립다.
성가대에서 오랫동안 찬양으로 헌신하면서,
음치인 남편이 차마 성가대를 할 수 없어
(서울대 음대 교수님이 지휘를 맡으셨던 수준 높은 성가대였다.)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이 안타까우셨는지
명예성가대원 임명장을 수여하여 지금도 간직하여 자랑하고 있다.
집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정든 교회를 뒤로하고
안양(평촌)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겸이를 낳아
관양제일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2년 정도 살다가 드디어 분당의 매화마을에 벽산빌라를 분양받아
이사하게 되었고 당시 직장생활을 했던 때라
한겸이를 맡길 선교원이 있는 교회를 찾아다니다
여의치 않아 집 앞 가까운 교회에 나간 것이 산성교회였던 것이다.
상가교회는 여러모로 염두에도 두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교회는 어릴 때부터 다녀서 신앙양심은 있었기에
직장생활 핑계로 간신히 주일만 지키는 믿음에 늘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이로 인해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경험도 없던 우리가
말씀을 들으며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고 성령체험하면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주일은 물론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에
GBC, GBS 말씀 과정까지 모두 성공하여 진정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하며 기도하다
“너처럼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나의 사랑을 전해줄래?” 하시는 음성을 듣고
즉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나 같은 사람을 건지기 위해
전도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부족한 자가 전도사가 되어
지금껏 쓰임 받고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항상 묵묵히 헌신하며 나아가는 남편 왕경호 장로와
작년에 사랑스러운 가정을 이룬 아들 내외를 보며
더욱 감사의 조건이 차고 넘침을 보게 된다.
또 귀한 사돈과의 만남도 허락해 주셨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지금까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해 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더 많은 것을 받았으니
더 많이 감사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늘 마음에 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나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