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8 [신수정 권사]

2023-01-07
조회수 154

"신수정 권사의 고백"


국과 교류가 활발해진 한국 기업들이 주재원을

대거 파견하던 2000년도 중반 우리 가정도 좋은 기회를 통해 3년 거주하게 되었다.

외국은 이단이 많아 교회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당부로 찾던 중

여의도순복음교회 파송선교사 주축으로 중국선교에 열정을 쏟는 한인연합교회로 정했다.


생활에는 불편이 없었지만, 신앙생활에는 제재가 많았다.

주일예배만 십자가를 걸어 놓을 수 있었으며 외국인 신분이었지만

공안의 감시 속에 장소를 옮겨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었다.

그럼에도 낯선 땅에서 서로 위로하며 정보도 공유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보니 장소는 협소했지만,

성도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귀임하는 가정이 늘면서

각자 섬길 수 있는 성령충만한 교회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귀임 후 집을 영통으로 구하고, 새로운 환경과 새 학기를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로 정신없을 때

어린시절 잠시 앓았던 딸의 아토피가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심하게 재발하였고

사춘기를 겪기 시작하는 아들과의 갈등으로 힘들었다.

당시 수원에 있는 M교회에 출석했는데 해결되지 않는 갈급함으로 낙심해 있을 때

권혁선 권사님의 인도로 성경대학을 수강하면서

그동안 몰라서 영적으로 놓쳤던 부분을 알게 되었고

그 자리가 말씀으로 보완되면서

자녀들로 인한 근심, 두려움, 초조한 마음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때 내 기억 속 수지산성교회는 전도사님 중심의 중보기도회,

여기저기서 들렸던 축귀사역, 노방전도 등

내가 기도하고 바랐던 성령충만한 교회 그 자체였다.

이런 교회라면 딸의 고질병을 해결 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 속에 교회를 옮겼고

가족들과 온전한 주일성수를 약속했으며 성전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자녀의 문제가 우리 가정을 새롭게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사실과 회복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몸 80% 이상이 심한 가려움과 진물로, 특히 회생불가일 것 같은 얼굴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게 치유되는 은혜를,

대화가 단절되었던 아들과는 코로나 자가격리가 기회가 되어 회복 되었으며

믿음의 친구를 만나 하루를 큐티로 마무리하는 아들로 변화하였다.

사실 이것이 딸의 치유보다 더 기쁘고 감사하다.

또한 이 나이에 예수를 어떻게 믿냐며 부정적이셨던 친정 부모님께서는

교회를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같은 마음으로 중보해준 교구식구들,

10여 년을 한결같이 딸에게 안수해주신 목사님,

긴 시간 축귀사역으로 함께해 주신 세분의 전도사님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