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4 [신경화 안수집사]

2022-12-03
조회수 195

"신경화 안수집사의 고백"


12월이면 정년이다. 그동안 이곳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였고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으니 나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정도 많이 든 곳이다.

다행히 이곳에서 직장생활은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앞으로도 지켜주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린다.

야곱으로 인하여 삼촌 라반이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이곳에 축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사람들은 나이 육십은 젊은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예전과 같지 않아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당장에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되면

예수님이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또 쓸데없는 일을 미리 걱정한다고 야단을 친다.

얼마 전에도 회사 때문에 걱정했던 일만 해도 그랬다.

아직도 믿음이 아내만 못한 것 같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친구이다.

우리가 만난 지는 벌써 53년 정도 되었다.

의정부에서 용인(수지)로 이사를 왔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사고를 치면서 아내 손에 붙들려 목사님을 찾아뵙고

교회를 다니겠다고 약속하면서 교회에 등록을 했다.

처음에는 목사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다녔었고

때로는 조금씩 때로는 목사님의 말씀이 귀에 빠르게 들어오면서

아내와 딸아이 몰래 눈물을 흘릴 때도 많이 있었다.

나는 소리소문없이 수시로 사고를 치고 다니는 *이라

아내는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숨소리가 거칠어져서 전화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아내한테 속을 보통 썩인 *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나 같은 *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

‘진작에 교회를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모태 신앙자나 주일학교, 학생회 등을 다녔던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웠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져 갔다.

그래서 당시에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고

세상의 임금(마귀)이 주었기 때문에 그런가? 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하면서

위안으로 삼기도 했었고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에 생일도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꾸어 버렸다.


한번은 신년 축복의 말씀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였었는데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교회 안에 있기만 하면 복을 받는 줄 알고

할 일 없이 교회에 있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다.

목사님은 나의 가슴속에 스승이 되어서 자리를 잡으셨고

믿음의 친구(형제)들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이때쯤 어머님도 우리와 같이 살고 계셔서 교회를 함께 다니시기도 했었다.

지금은 다시 의정부에 살고 계시지만 많이 연로해 지셨고

치매도 있으셔서 남편(아버지)의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시고

손주들도 잘 못 알아보신다. 그리고 당신의 나이도 잘 모르신다.

그런데도 자식들의 생일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당신보다 자식들을 더 사랑하시는 것 같다.

나는 어머니께 다른 것은 다 모르셔도 좋으니

하나님(예수)만은 잊으시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 돌아온다.


생각보다 빠르게 시작되었던 평창 드림힐 빌리지는

교회 친구들과 목회 비전을 이루면서 살겠다는 마음에서 결정을 하게 되었고

또한 내가 병원에서 몸부림칠 때 내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해 주시던 분들도 많이 있어서 너무 감사했었다.

그런데 나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해 주었고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주었고

또 내가 방황할 때 기도해 주었던 친구들이 너무 많이 안 보인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귀하고 복되게 쓰임 받으며 함께 하고 싶었다.


요즘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조용히 나의 친구(형제)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