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0 [하영수 안수집사]

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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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수 안수집사의 고백"


교를 열심히 믿고 섬겼던 가정에서 태어났고,

태몽으로 부처님 꿈을 꾸고 널 낳았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며

그 믿음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지만,

두 자식을 먼저 가슴에 묻으신 어머니께서 한이 되셨는지

정말 하루아침에 그 모든 걸 버리시고 교회에 등록하셨다.


어머니를 따라 덩달아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것이 20대 초반이었다.

이명순 권사를 만나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아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무언지 아무것도 몰랐고,

성경을 그저 이스라엘의 역사책에 불과하다고 믿었던 나에게

수지산성교회를 만난 후 24년의 동행은 정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행운)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하나님과 천국을 알게 하셨고,

나아가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되게 해주었던 시간이었다.

등록과 동시에 성경대학 강의를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졸업할 즈음에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의 믿음을 갖게 하셨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1부 예배 차량 봉사였다.

이후 경조부, 찬양인도, 주일학교, 호산나 선교부 등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주저하거나 마다하지 않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한 집사의 말 한마디가 나를 교회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날도 주일 1부 예배 찬양인도와 예배를 마친 후

기타를 메고 주일학교로 가기 위해 교육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이었다.

그때 두 남자 집사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중 한 집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집사님! 집사님은 왜 가난해요? 딴따라는 원래 그런 건가요? 허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아무런 답을 못했던 것 같다

만약 우리에게 요셉의 축복과 거지 나사로의 축복 중 선택할 수 있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요셉의 축복이 나의 축복이 되기를 기도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사로에게

“당신은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거지야?”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까?

당시 그 집사는 교회에서 나름 여러 일들을 많이 하던 집사로 기억된다.

그 집사와는 사적인 만남이나 대화를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집사의 말이 그저 농담으로 넘기기에는 나의 처지와 상황이 그러질 못했다.

그 당시 물질의 어려움으로 우리 가정은 상당히 힘든 시기였기에

나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던 것 같았다.

솔직히 교회를 떠날 생각도 했었다.

그날 이후 교회 성도들과의 대화나 교제는 내 스스로 단절시켜 버렸고,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도 싫었다. 꼭 필요한 말 이상은 하지 않았다.

그 이후 당시 맡았던 찬양인도와 주일학교, 교구장 직분을 하나씩 내려놓고

철저하게 교회에서 Outsider가 되어 버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 자신을 보니

나의 믿음의 모습은 누더기 걸레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추하기만 한 내 믿음의 모습을 예전의 모습으로 회복시키고 싶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나름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추스르고 시작한 것이 헵시바 성가대였다.

그러던 중 그 집사는 언젠가부터 교회에서 보이질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고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그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

이 찬양의 직분이 나를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끄트머리에서

더 이상 곁길로 새지 않게 붙들어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싶다.

오늘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올리게 된 것은

나의 잘못된 한순간의 판단으로 믿음의 선한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하고,

차갑고 인색한 추악한 모습을 보인 내 모습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또 성도분들께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어서이다.

아버지 하나님! 이 못난 영혼의 종지 그릇과 같은

좁디좁은 믿음의 그릇을 깨뜨려 버리시고

자숫물 그릇처럼 깊고 넓은 믿음의 그릇으로 다시 빚어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