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30 [변인애 권사]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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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인애 권사의 고백"


100% 옳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감사합니다!!

오래 참으시고, 보호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호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제 금요철야 첫 공동기도제목 ‘믿음의 말을 하자’는 행동 이전에 말인데

이렇게 순서 하나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은혜가 되었는지요.

이런 것들을 일깨워 주시는 황규식 목사님께도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 안에서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음을 압니다.


저는 황규식 목사님 처남댁입니다.

1997년 이신향 사모님을 통해 기드온성경대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개포동 성지교회에서 나름 열심 있는 집사였답니다.

여러가지 성경공부도 했었고, 주일학교 교사도 15년 이상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듣는 것보단 분당으로 이사 간 친한 지인을 소개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같이 갔다가 1강을 듣고 바로 목사님께 "저도 들어도 될까요?"라고 여쭤보았습니다.

친척이기에 부담스러우실까 봐요.

그랬더니 바로 2만원 내고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이 순간의 결정이 영적근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기드온성경대학은 저에게 정말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었고,

일단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개포동에서 매화마을까지 오고 가는 길에도 성경대학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산성 교인들이 왜 그렇게 열성적인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니던 교회가 죽전에서 개척하게 되어 수지로 이사오게 되었으나

안타까운 상황으로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후, 저희 가족을 수지산성교회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은에서 찌끼를 제거하듯,

하나하나씩 저희 가정을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남편 이신형 장로의 몇 번의 투자 잘못으로 많은 대출이자의 감당,

무리해서 이사 온 집값 폭락(하우스푸어가 될 지경),

환율의 급등으로 한꺼번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로 인해 미국에 있었던 딸이 중도에 돌아와야 할 지경까지 왔고

하루하루가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안에서 고난이 축복이다!’

이러한 고난들이 감사하게도 주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해주셨습니다.

결국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기발하신(?) 아버지의 방법으로 그때 그때 해결해 주고 계셨습니다.

누가 그 많은 길을 놔두고 모세에게 바다를 갈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실 줄을 알았을까?

인간적으로 길이 없어도 아버지 말씀에 의지하면 길이 생기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가면 물 위를 잠시 걸을 수 있는 것처럼요.


내일 일을, 아니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저의 인생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빛이니이다.

어둠 속에서도 말씀의 등불을 비추고 발을 내딛고

한순간 한순간 겸손하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나의 약함을 강함으로 변화시키는 아버지, 아버지를 평생 자랑하는 인생이 되렵니다.

아무리 나빠도 지옥만 할까요?

아무리 좋아도 천국만 할까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을 허락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평생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