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5 [이해창 안수집사-2부]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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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창 안수집사의 고백"


방에 제단을 설치하면서 어머니께서는 흰 종이 위에다 ‘절하지 마세요.’라는

글자를 적어 제단상 가장자리에 붙여 놓으셨다.

교회를 다니는 조문객들에겐 관계없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일반 조문객들이었다.

영정 앞에서 엎드려 절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조문 예법임에도 절하지 말라고

종이에 적어 붙여 놓았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영정 앞에 서서 손을 모으고 절하려는 순간 종이를 보고서는 다들 멈칫하며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상주의 의사를 존중하여 대부분 선 채로 조의를 표하였다.

하지만 일부 조문객 중엔 본인 의지대로 그냥 절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조문객은 첫 번째 절하고 일어나면서 뒤늦게 종이를 발견하는 바람에

두 번째 절을 못하고 엉거주춤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동료와 부서장도 문상을 왔는데

식사자리에서 부서장이 “문상을 온 사람들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조문객에겐 실례가 될 수도 있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당시 나도 그 말에 일견 수긍이 되었다. 어찌 보면 종교가 없거나

또는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우리 집의 종교적 가치를 강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장례 첫날 ‘절하지 마세요.’라는 종이 때문에 벌어진

여러 장면들을 보면서 결국 가족들 상의하에 둘째 날에는 종이를 띄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순박한 믿음이 빚어낸 해프닝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어머니가 당신의 삶 속에서 지키고자 했던

신앙적 신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90세가 되신 어머니는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다니신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요새 새벽기도 가시면 무슨 기도하세요?”라고 여쭤보니

“너희들 위해 기도하지.”라고 말씀하신다.

어머니 뱃속에 잉태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그저 감사 또 감사할 뿐이다.


기독교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성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서 어머니의 믿음과 눈물의 기도에 대해 고백하기를

“나를 위해 펼쳐 주신 당신의 손은 이 깊은 흑암으로부터 나를 건져 주셨습니다.

이는 나의 어머니가 무릎 꿇고 눈물로 당신께 기도한 까닭입니다.

당신의 신실한 여종인 나의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들이 죽은 자식을 위해 우는 것보다도

살아 있는 나를 위해서 더 울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늘 기도하던 곳은 눈물로 바닥이 흥건히 젖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위해 흘린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 눈물을 멸시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 주일저녁 예배 설교 중 목사님께서

모태신앙자의 축복에 대해 언급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오늘의 나 된 것이 어머니의 평생의 기도 덕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의 마음을 담고 싶어 이 지면을 통해 글을 쓰게 되었다.

수지산성교회에 온 지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담임목사님을 만나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깨우치게 되면서

비로소 어머니 기도의 소중함과 가치 그리고 제사의 구습으로부터

오래전 나를 자유케 한 어머니의 헌신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빌어 목사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깊은 밤 아파트 창문 너머로 어둠이 드리워지고

추석명절을 맞아 휘영청한 달을 바라보면서

어린시절 어머니의 기도를 회상하고 상념에 젖다 보니

눈가에 어머니의 눈물이 너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