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4 [이상근 안수집사]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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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안수집사의 고백"


97년 군 제대 후 산성교회를 다니던 큰 매부가 소천했다.

결핵환자로 몇 번의 재발로 인해 더 이상 백약이 무효한 상황에서

당시 둘째 누나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산성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주님의 치료하심을 기대하고 큰누나와 함께

주님을 영접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열렬한 불교신자이셨던 어머니는 못마땅해 하셨지만

매부가 교회를 통해 치료만 된다면야

기꺼이 자신도 크리스챤이 되겠다고 다짐을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어찌 같겠는가.

교회에서 힘겹게 운전봉사를 하던 큰 매형은 소천하고 말았다.

누나들은 절망했다. 주님의 방법으로 치료될 거라는 희망이 무너지고

치료를 통해 가족들의 영혼이 구원받으리라고 믿었던 소망들이 좌절된 것이다.


매부의 소천 후에 교회의 주관으로 장례절차가 진행되었다.

절망과 실의에 빠졌던 큰누나와 둘째 누나는 예기치 않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집안에 임한 것을 보게 되었다.

조용히 장례절차 하나하나를 별말 없이 참석하여

지켜보시던 어머니가 장례를 마친 후 당신은 이제부터 교회에 나가겠노라고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선포하신 것이다.

정말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놀라운 반전이었다.

교회와 누나들을 향해 핍박의 강도가 거세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아마도 죽음을 마주한 장례식장에서 전하는 목사님의 메시지,

내 일처럼 장례식의 일들을 열심히 헌신하는 교회 집사님들의 모습들,

염할 때 보았던 소천한 매형의 평안해 보이는 얼굴 그리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던 손길들의 중보기도가 모여서 이뤄진 결과라고 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어머니의 주도하에 우리가정은

일순간에 불교와 무교도 집안에서 기독교 집안이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믿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새벽기도를 거의 거른 적이 없는 훌륭한 믿음의 조상이 되어 주셨고

아버지는 60세에 운전면허를 따서 한동안 교회 차량을 운행하면서

봉사하시는 직분도 맡으셨다.

나 또한 설교 말씀들과 성경대학, 대학원을 통해 미약하지만

조금씩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가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 삶에서 떠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가난의 저주도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을 반쯤 포기할 때 즈음해서 소개로 만난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내가 늘 그렇게 부러워했던 대상자인 모태신앙자 아들을 둘씩이나 낳게 되었다.

만약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현실이 되기 쉽지 않았던 일들이

내 삶에 현실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우리가정과 나의 삶에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고

모든 저주로부터 건져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만나게 해주신 목사님과

수지산성교회와 성도님들의 헌신과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