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4 [박미애 권사]

202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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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애 권사의 고백"


편이 안성으로 회사를 옮기고 1년 정도 주말부부를 하며 지내다

나는 정든 부산을 떠나 이사를 결정하였다.

남편 직장이 안성이니 안성으로 이사하는 것이 당연한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려고 그때부터 일 하셨던 것 같다.

낯선 안성보다는 친구가 있는 용인이 어떠냐는 남편의 배려에

죽전 동부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가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 가가호호 방문을 하며

전도를 아주 열심히 하던 때였다.

양전도사님과 조상환 권사님께서 우리 집에 전도를 오셨고

나는 불교라고 부드럽게 거절의 의사를 보였지만 두 분은 그럼에도 계속 찾아오셨고

그러던 어느 날 장염으로 고생하던 수진이를 안고 간절히 기도해주고 돌아가셨다.

그 밤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 상관도 없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모습이 너무 감사했고 잠깐이지만 고등학교 때 다녔던 교회를 떠올리며

저분들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알아볼까? 라는 생각에 성경대학을 수강하게 되었다.


성경대학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영적인 체험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성경대학이 끝나기 전 새생명구원축제를 통해 나는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때 가장 큰 걱정은 남편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였는데

의외로 남편은 자기만 전도하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여

두 딸을 데리고 정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며 천국을 소망하게 되니

가장 먼저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그냥 둘 수 없었고 기도하게 되었다.

남편의 영혼구원과 부모님의 영혼구원 나는 이 두 가지를 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사업장이 인천이었기에 매일 출퇴근을 하며

차 안에서 혼자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다.

사업장이 멀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남편이 사진을 잘 찍으니 교회 나와서

사진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해 부사밤을 통해 남편을 교회 등록하게 하셨고

다음 해 아직 믿음이 없던 남편에게 교회 등록사진을 찍는 직분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셨다.

직분이 사람을 만든다던 목사님의 말씀처럼

성실함이 무기인 남편은 아주 성실히 직분을 감당하며,

온전한 주일성수를 하며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멀리 부산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만남의 축복을 기도했고 평생 제사를 지내며

장자의 역할을 감당하셨던 아버지는 코로나로 예배가 어려웠던

2020년 나는 이제 교회를 다닐테니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포하시고

작은 아버지에게 제사를 주시고 교회를 다니시기 시작하셨다.

금방 응답하시는 기도도 있었고 15년의 기다림 끝에 응답하시는 기도도 있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하심을 경험케 하셨다.


뒤돌아보니 어느 한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던 순간이 없었고

감사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목사님께서 첫 심방 때 주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늘 묵상하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길 소망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