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6 [이연우 안수집사]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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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우 안수집사의 고백"


린 시절 육신의 아버지가 계셨지만 한 집에서 살아본 기억은 없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어머니와 배가 다른 형제들과 사시는

역기능적인 가정 속에서 저는 자랐습니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홀로 교회에 나가면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자란 저는 교회는 다녔지만

어린 시절 받은 마음속의 상처가 성인이 된 후에도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신앙의 굴곡을 따라

나의 삶의 모습도 굴곡을 반복하며 살던 어느 날,

벽기도를 다녀오는 길에 부부 싸움을 했습니다.

급하고 욱한 성질을 참지 못하고

교차로에서 죽으려 자동차 액셀을 밟으려는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방금 전까지도 불같이 화를 내었던 내가 나도 모르게 통곡을 하면서

내 육체가 주님 앞에서 물처럼 녹아내리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면 깊은 곳에서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를 고백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본 주님의 모습은 흠이 없고 완벽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을 이 세상 언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체험을 한 뒤로도

수시로 올라오는 욱하는 못된 성질은 여전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신갈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애국운동을 같이 하시는 안성애 권사님께서

먼저 수지산성교회 등록하여 다니고 계셨고,

권사님의 인도로 수지산성교회에 몇 번 출석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귀신 쫓는 축귀사역 기도가 왠지 낯설고 거부감이 들어

오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등록하던 날,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다니려면 주일성수는 기본이고

침례를 받아야 하며 성경대학을 수료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명색이 안수집사인데 그동안 평일에는 회사 일에,

주말에는 여주에 벌려놓은 1000여 평의 농장일 때문에

주일 성수는 고사하고 인터넷 예배도 잘 드리지 않았던 신앙이

바닥을 치고 있었던 상태라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신앙이 병들었다고 하신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농장에 가서 주일날 밤까지 일하던 내가

매주 토요일 오후에 강의하는 G.B.C를 수료하고

지금은 G.B.S 과정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저 막연하게 알거나

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을 담임목사님께서 이해가 되도록

명확하게 설명해 주시는 그 시간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매일 아침 우리 부부가 아무리 바빠도 회사 출근하기 전에는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매일 잠들기 전에도 찬송 부르고 성경 읽으며 기도(축귀)를 하고 잡니다.

믿음의 습관이 쌓이며 아내에게 화를 잘 내던 내가

화를 잘 내지 않는 나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귀신에게 속아

‘너는 자라온 환경이 그러니 욱하고 성질내는 게 당연한 거야.’라는

거짓된 속삭임에 속아서 살아왔던 지난날의 내 삶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이제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으니

지난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지하고 형편없는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주님께서 당신의 몸을 직접 보여주시고

기도 중에 음성도 들려주시며 꿈속에서 성경 구절(요5:24)도

직접 써 주시면서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내가 성전에서

매 주일 성가대원으로 목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주님을 향한 저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