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5 [강두현 전도사]

2023-03-04
조회수 204

"강두현 전도사의 고백"


'중꺾마!’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입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이죠.

저는 이 줄임말을 듣고, 잠언4:23이 생각났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음이 꺾이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지요.

반대로 내 마음만 바로 서 있다면, 상황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 심야기도회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 찬양을 하는데,

‘아버지! 저에게도 부흥을 주세요. 회복시켜 주세요!

저의 미지근한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일어나 찬양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고민했습니다.

‘내가 일어나서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면,

뒤에 계신 성도님들의 시야를 가리게 될 텐데 어쩌지...’

그럼에도 일어나 찬양하고픈 마음이 꺾이지 않자,

마치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제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찬양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제 마음에 꽂히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제 마음에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은 제 심령에 성령의 단비가 내린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엄한 책망을 하셨습니다.

왜 책망하셨을까요? 바로 마음이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꺾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7~8절을 보세요.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던 자들입니다.

이들의 겉모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은 이들의 겉이 아닌 속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판단 기준은 겉이 아닌 속입니다.

외부로 돌출된 입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십니다.

이 사실이 무서우신가요? 저는 무섭습니다.

제 더럽고 추한 마음을 예수님 앞에 도저히 속일 수 없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그런데 더 감사합니다. 왠지 아세요?

제 추한 마음과 다시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로 돌이키려는 마음까지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 내 아들아! 네 마음이 꺾이지 않고, 나를 향해 돌이키려 하는구나.

내가 너를 용서하고, 사랑한다.’

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에 무한 감사가 됩니다.


사랑하는 수지산성 가족 여러분!

이 예수님의 음성을 우리 모두가 듣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지금 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말씀 앞에서 비춰봐야만 합니다.

나도 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마음이 멀어진 채로

입술로만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가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지금 성령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찔림의 은혜를 주신다면,

꺾어 버리지 마시고, 이렇게 고백해 보시면 어떨까요?

‘예수님, 제 마음을 다시 회복시켜 주세요!

그 뜨거웠던 첫사랑을 다시 불태우고 싶어요.’

정말 잘 하셨습니다!! 이제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아주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애통하는 마음을 보시고,

분명히 회복과 부흥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중꺾마!’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입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이죠.

저는 이 줄임말을 듣고, 잠언4:23이 생각났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음이 꺾이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지요.

반대로 내 마음만 바로 서 있다면, 상황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 심야기도회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 찬양을 하는데,

‘아버지! 저에게도 부흥을 주세요. 회복시켜 주세요!

저의 미지근한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일어나 찬양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고민했습니다.

‘내가 일어나서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면,

뒤에 계신 성도님들의 시야를 가리게 될 텐데 어쩌지...’

그럼에도 일어나 찬양하고픈 마음이 꺾이지 않자,

마치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제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찬양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제 마음에 꽂히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제 마음에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은 제 심령에 성령의 단비가 내린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엄한 책망을 하셨습니다.

왜 책망하셨을까요? 바로 마음이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꺾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7~8절을 보세요.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던 자들입니다.

이들의 겉모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은 이들의 겉이 아닌 속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판단 기준은 겉이 아닌 속입니다.

외부로 돌출된 입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십니다.

이 사실이 무서우신가요? 저는 무섭습니다.

제 더럽고 추한 마음을 예수님 앞에 도저히 속일 수 없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그런데 더 감사합니다. 왠지 아세요?

제 추한 마음과 다시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로 돌이키려는 마음까지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 내 아들아! 네 마음이 꺾이지 않고, 나를 향해 돌이키려 하는구나.

내가 너를 용서하고, 사랑한다.’

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에 무한 감사가 됩니다.


사랑하는 수지산성 가족 여러분!

이 예수님의 음성을 우리 모두가 듣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지금 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말씀 앞에서 비춰봐야만 합니다.

나도 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마음이 멀어진 채로

입술로만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가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지금 성령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찔림의 은혜를 주신다면,

꺾어 버리지 마시고, 이렇게 고백해 보시면 어떨까요?

‘예수님, 제 마음을 다시 회복시켜 주세요!

그 뜨거웠던 첫사랑을 다시 불태우고 싶어요.’

정말 잘 하셨습니다!! 이제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아주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애통하는 마음을 보시고,

분명히 회복과 부흥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