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9 [현경화 사모]

2023-01-28
조회수 251

"현경화 사모의 고백"


20살 이후 예수님을 영접한 후 조금의 실수들도 있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믿음의 전후 명암이 명확하다.

어릴 때, 명성교회 옆에 살았기에 주일 예배시간 전후에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차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우리는 항상 저 교회 때문에

이런 날 어디 놀러 가기도 힘들다는 부모님의 푸념을 수없이 들었다.

그렇게 한심한? 무리들을 지나 한강에 가서 시간을 보내든지 아니면

친척들이나 직원분들과 주말 내내 좋다는 곳에 숙소를 잡고 여행을 다니던지...

일요일은 그렇게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놀며 보내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았다.


교회에 처음 갔을 때도 비록 복음을 듣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마음속에 어떻게 일요일에 놀지 않고 교회에만 있는지 궁금했다.

교회에만 다니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늘상 예배에 늦게 들어가 얼굴도장 찍고

‘난 이제 죽어도 무서운 게 없다.’며 일찍 나와 시간을 보냈다.

언니같은 전도사님의 부탁에 여름 성경학교를 돕다

전적인 하나님의 강권하심 속에 아이들에게 선포되는 메시지가 내게 들렸다.

길거리에서 전도된 아이들과 함께 나도 (돕는 건지 참가하는 건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조금씩 알아가며 성경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지 않아도,

친구들과 끝없이 약속을 잡으며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예전의 나는 전혀 알 수도 없던 기쁨이 마음속부터 차올랐다.

기가 막히게 변한 내 마음이 나도 너무 신기했다.

여기저기 주님을 자랑하며 어떻게 예수님을 안 믿고 사냐며 만나는 사람마다,

들어가는 가게마다 조금의 친분만 있으면 전도하고

교회에서는 어른 전도팀과 함께 다니며 노방전도도 했다.

그러다 술에 의지해 살고 있는 어떤 김**아저씨가 교회에 오게 되었고,

어쩌다 한번 나오는 그 아저씨 집에 함께 심방가자는

사모님의 제안에 한겨울, 사모님과 전도사님을 따라

죽전에 판잣집들이 많은 허름한 마을에 도착했다.

여느 마을과 달라 긴장하며 택시에서 내리니 넓게 펼쳐진

흙색의 판잣집들 앞에 확연히 대비되는, 오색빛깔 전구 아래

따스한 온기를 품은 큰 오두막집 같은 교회가 있었다.

어쩜 그리 예쁜지... 아저씨 집에 가서

“예쁜 교회가 바로 앞에 있는데 교회에 왜 안 가세요~”라며

했던 말이 생생히 기억난다.

내 마음에 그렇게 예쁘게 사진 찍어놓은 듯 있는 그 교회가 바로 우리 수지산성교회이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게 하나님의 때가 있었고 섭리에 따른 만남이 있었다.

때론 감동을 주시고 슬픔도 알게 하시며

주님의 주권 아래 그렇게 주님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하신다.

내 뜻대로 되었다면 오늘 난 여기에 있을 수 없고 주님을 이렇게 알 수도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어둠 가운데 있던 내가 주님의 손에 이끌려

여러 믿음의 언덕을 지나 지금은 온전한 주일성수를 넘어

삶이 예배라는 높은 언덕을 지나며 때론 부족한 내 자신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기쁘게 우리 주님이 내게 주시는 마음을 누리고 있다.

많이 부족함에도 사모님이라고 애정 어리게 불러주시는 성도님들께 너무 고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실감하며

오늘도 “주님, 저는 못 해요. 성령님 말씀해주세요.”라며

나의 어찌할 수 없음과 그러기에 주님만 의지함을 고백한다.

사랑했던 학교가 정리되었고

교회에서도 한숨이 기도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지만

주님은 내 삶의 해결사가 아닌 내 삶의 주권자이심을

나의 온 믿음으로 고백하며 애정하는 찬송가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를 삶이 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