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향 사모의 고백"
학교를 졸업하고 내 고향 김천으로 내려갔다.
남자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24살 애송이 음악선생이 되었다.
어떤 꿈이나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 당시 나에겐 전부였던
사랑하는 사람이 군 복무 중이었기에 기간도 채울 겸
나름 바쁜 일정을 보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아버지를 따른, 내키지 않은 발걸음이었다.
그랬던 3년의 세월이 내 생애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줄이야...
시골 남학생들의 순박하고 가식 없는 그 모습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수업 시간은 항상 즐거움과 웃음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지루하다면 한없이 지루한 게 음악 시간인데
호흡을 잘 맞춰주는 아이들의 얼굴은 너무나 밝았고
수업이 끝났는데도 괜히 공책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와 엉뚱한 질문을 하곤 했다.
지금은 각자의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 때가 되면
아부하는 귀여운(?) 60대 녀석들이다.
그사이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직장에 들어갔고
나도 그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다시 서울로 올라와
그해 3월 가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아름다운 삶의 1막이 끝이 나고 나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기다리고 바랐던 어려운 결혼,
하지만 하나님을 떠났던 가정의 시작은 악한 영이 함께 개입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힘든 나날들이 계속 되었고 큰 아이가 태어났다.
돌이 지날 무렵부터 인가 알지 못한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곱 살’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면서
그때마다 불길함이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이를 업고 길을 가다가도 ‘일곱 살’이 떠오르면
사랑하는 아들이 어떻게 될 것 같아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누구에게도 말을 못 하고 혼자서 애태우며 지내다가
아이가 네 살 때 둘째를 낳고 작은 개척교회 사모님의 권유로
갓난쟁이와 네 살 아들을 데리고 억지로 반주로 봉사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선 나에게 여러 형태로 사인을 보내셨지만,
반주를 하면서도 그냥 봉사였지 좀처럼 믿음이 생기지 않았고
남편 역시 돌아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흐지부지 세월을 보내고 큰 아이가 여섯 살 때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조카 아이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달려가 그 아이 얼굴을 보는 데
우리 큰아이 얼굴로 보이면서 ‘다음은 네 차례다.’라는
하나님의 또렷한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음엔 일곱 살 되는 우리 아이?’ 난 하나님의 퍼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하나님, 계속 기다리고 계셨군요.
제 영이 어두워서 오랜 세월 미련을 떨었어요..’
남편은 미친 듯이 교회와 목사님을 섬겼고
수년 후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가정이 되었다.
나를 억누르던 ‘일곱 살’의 두려움이 떠나고 사랑의 매개체였던 아이는
주의 종이 되어 열심히 충성하고 있다.
이 어찌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놀랍고 놀라우신 나의 아버지, 이 사랑과 감사를 어떻게...’
"이신향 사모의 고백"
학교를 졸업하고 내 고향 김천으로 내려갔다.
남자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24살 애송이 음악선생이 되었다.
어떤 꿈이나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 당시 나에겐 전부였던
사랑하는 사람이 군 복무 중이었기에 기간도 채울 겸
나름 바쁜 일정을 보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아버지를 따른, 내키지 않은 발걸음이었다.
그랬던 3년의 세월이 내 생애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줄이야...
시골 남학생들의 순박하고 가식 없는 그 모습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수업 시간은 항상 즐거움과 웃음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지루하다면 한없이 지루한 게 음악 시간인데
호흡을 잘 맞춰주는 아이들의 얼굴은 너무나 밝았고
수업이 끝났는데도 괜히 공책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와 엉뚱한 질문을 하곤 했다.
지금은 각자의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 때가 되면
아부하는 귀여운(?) 60대 녀석들이다.
그사이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직장에 들어갔고
나도 그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다시 서울로 올라와
그해 3월 가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아름다운 삶의 1막이 끝이 나고 나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기다리고 바랐던 어려운 결혼,
하지만 하나님을 떠났던 가정의 시작은 악한 영이 함께 개입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힘든 나날들이 계속 되었고 큰 아이가 태어났다.
돌이 지날 무렵부터 인가 알지 못한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곱 살’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면서
그때마다 불길함이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이를 업고 길을 가다가도 ‘일곱 살’이 떠오르면
사랑하는 아들이 어떻게 될 것 같아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누구에게도 말을 못 하고 혼자서 애태우며 지내다가
아이가 네 살 때 둘째를 낳고 작은 개척교회 사모님의 권유로
갓난쟁이와 네 살 아들을 데리고 억지로 반주로 봉사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선 나에게 여러 형태로 사인을 보내셨지만,
반주를 하면서도 그냥 봉사였지 좀처럼 믿음이 생기지 않았고
남편 역시 돌아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흐지부지 세월을 보내고 큰 아이가 여섯 살 때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조카 아이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달려가 그 아이 얼굴을 보는 데
우리 큰아이 얼굴로 보이면서 ‘다음은 네 차례다.’라는
하나님의 또렷한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음엔 일곱 살 되는 우리 아이?’ 난 하나님의 퍼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하나님, 계속 기다리고 계셨군요.
제 영이 어두워서 오랜 세월 미련을 떨었어요..’
남편은 미친 듯이 교회와 목사님을 섬겼고
수년 후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가정이 되었다.
나를 억누르던 ‘일곱 살’의 두려움이 떠나고 사랑의 매개체였던 아이는
주의 종이 되어 열심히 충성하고 있다.
이 어찌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놀랍고 놀라우신 나의 아버지, 이 사랑과 감사를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