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형 장로의 고백"
금년이결혼37주년이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내 나이 칠순이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매형께서 담임목사로 계시는 수지산성교회에 부족한 제가 장로가 되고
지금까지 지켜주시니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면서 나름대로시련도 있었다.
50대 중반 이후 눈을 잃을 수 있다는 2번의 망막박리 수술,
허리에척추협착증 수술, 무릎연골 파열로 수술을 하였지만
사물을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할 뿐이다.
또한 몇 번의 투자 잘못으로 대출이자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재정적 어려움도많았지만
고비마다 생각지도 않게 해결해 주시니 하나님의은혜가 너무나도 크다.
지금도 척추전방위증으로항상 조심하며 직장생활까지하고 있다.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지나간다.
우리 가족이 서울 강남에 있는 성지교회를 다니던 중
담임목사님께서 미국에서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친 후 귀국하셔서
갑자기 용인에 장차 헤브론같은 땅에 교회를 개척하신다고 해서 1999년도 말에
허허벌판의 땅인 죽전지역 상가건물에 임대받아 첫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서울 개포동에서 용인까지 새벽기도를 다닐 정도로 아내가 열성이라서
같이 따라다니기도했다. 얼마 후 아내의 강권으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용인으로 이사를오게 된다.
와서보니 다니던 교회맞은 편 훤히 내다보이는 가까운 곳에
통나무교회 수지산성교회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2002년도에 다니던 교회의 임대받은 건물이 뜻밖의 문중싸움에 휘말려
교회가 어렵게 되고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우리가족이 수지산성교회 성도가 되었으니
정말 기적같은 일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이제는 동고동락한 아내와 장성한 두 딸과 든든한 사위까지 있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정이 늘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며 하나님사랑 안에
서로 사랑이 넘치는 가족 또한 사돈가족의 영혼구원을 위해 항상기도한다.
젊은시절 회사업무로 전국 각지에 출장을 다니는 등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지난 6월 9일은 아버님 12주년 추도예배 참석차 누님, 여동생, 아내와 김천을 다녀왔다.
전쟁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운영하시면서 여중(고)를설립하시고
교회도 개척한 목사님이신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난다. 명절 때 내려가면
아버님께서 우리 부부와 한나, 사라를 위해 하나님 복을 받게 해달라고 항상기도해 주셨다.
할머니를 비롯한 모든 친인척이 예수님을 믿으니 어릴 때부터 제사는 없다.
학교에서 추도예배를 드린 후 명문고 김천예고를 세우신 형님 등가족과 함께
호중 소리길과 지금은 관광지가 된 어린시절 놀던 연화지를 둘러보니 감회가 새롭다.
김천예고를 졸업한 트바로티 김호중때문에 팬들의관광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이 점점 악하여지고 어렵고 힘든 시대에 살아가면서
우리 수지산성교회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을지키며
서로 화목하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섬기면서 갈급한 심령으로 준비된 신부가 되어
예수님 재림 시 들림받아 모두 천국잔치에 참여하기를기도한다.
나의생명이신하나님, 날마다 회개의 영이 임하게 하셔서
정결케 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하나님의 사랑이 해같이 빛나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 영광 가득한 가정, 이땅에서도 천국의 가정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신형 장로의 고백"
금년이결혼37주년이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내 나이 칠순이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매형께서 담임목사로 계시는 수지산성교회에 부족한 제가 장로가 되고
지금까지 지켜주시니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면서 나름대로시련도 있었다.
50대 중반 이후 눈을 잃을 수 있다는 2번의 망막박리 수술,
허리에척추협착증 수술, 무릎연골 파열로 수술을 하였지만
사물을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할 뿐이다.
또한 몇 번의 투자 잘못으로 대출이자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재정적 어려움도많았지만
고비마다 생각지도 않게 해결해 주시니 하나님의은혜가 너무나도 크다.
지금도 척추전방위증으로항상 조심하며 직장생활까지하고 있다.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지나간다.
우리 가족이 서울 강남에 있는 성지교회를 다니던 중
담임목사님께서 미국에서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친 후 귀국하셔서
갑자기 용인에 장차 헤브론같은 땅에 교회를 개척하신다고 해서 1999년도 말에
허허벌판의 땅인 죽전지역 상가건물에 임대받아 첫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서울 개포동에서 용인까지 새벽기도를 다닐 정도로 아내가 열성이라서
같이 따라다니기도했다. 얼마 후 아내의 강권으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용인으로 이사를오게 된다.
와서보니 다니던 교회맞은 편 훤히 내다보이는 가까운 곳에
통나무교회 수지산성교회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2002년도에 다니던 교회의 임대받은 건물이 뜻밖의 문중싸움에 휘말려
교회가 어렵게 되고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우리가족이 수지산성교회 성도가 되었으니
정말 기적같은 일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이제는 동고동락한 아내와 장성한 두 딸과 든든한 사위까지 있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정이 늘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며 하나님사랑 안에
서로 사랑이 넘치는 가족 또한 사돈가족의 영혼구원을 위해 항상기도한다.
젊은시절 회사업무로 전국 각지에 출장을 다니는 등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지난 6월 9일은 아버님 12주년 추도예배 참석차 누님, 여동생, 아내와 김천을 다녀왔다.
전쟁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운영하시면서 여중(고)를설립하시고
교회도 개척한 목사님이신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난다. 명절 때 내려가면
아버님께서 우리 부부와 한나, 사라를 위해 하나님 복을 받게 해달라고 항상기도해 주셨다.
할머니를 비롯한 모든 친인척이 예수님을 믿으니 어릴 때부터 제사는 없다.
학교에서 추도예배를 드린 후 명문고 김천예고를 세우신 형님 등가족과 함께
호중 소리길과 지금은 관광지가 된 어린시절 놀던 연화지를 둘러보니 감회가 새롭다.
김천예고를 졸업한 트바로티 김호중때문에 팬들의관광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이 점점 악하여지고 어렵고 힘든 시대에 살아가면서
우리 수지산성교회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을지키며
서로 화목하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섬기면서 갈급한 심령으로 준비된 신부가 되어
예수님 재림 시 들림받아 모두 천국잔치에 참여하기를기도한다.
나의생명이신하나님, 날마다 회개의 영이 임하게 하셔서
정결케 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하나님의 사랑이 해같이 빛나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 영광 가득한 가정, 이땅에서도 천국의 가정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