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집사의 고백(2, THNIK양육)
저는 어린시절 집은 가난했지만
공주님으로 자랐습니다.
남편과 동거를 시작하기 전날까지도
친정엄마는 제게 ‘공주님 식사하세요’ 하시며
자고 있는 저에게 상을 차려 가져다주시고,
결혼 후에도 전화를 끊으실 때면
‘공주님 사랑해’ 하고 말해 주셨습니다.
저는 친정엄마에게 항상 공주였습니다.
돈을 벌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저였지만
집에서는 공주님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교만했을까요?
돈으로 다 해결하려는 저의 교만 때문에
하나님은 김종현 집사를 만나게 하셔서
물질 고난을 겪고,
저는 하루아침에 공주님에서
시댁의 몸종으로 신분이 변한 것 같은
상황을 맞이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죄를 알지 못하고
남편에게 늘 불평, 불만을 쏟아내고
남편의 기를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안에 말씀이 없고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니
말씀을 듣고 흘려버리며 세월을 보내고,
물질을 우상 삼아 돈을 버느라
신앙생활을 쉬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제가 양육을 받으며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피해망상과 열등감을 포장하려는
교만의 죄들을 거룩한 척
저를 포장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건 내 삶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는데
내가 당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양육을 통해 그런 고난에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저를 위해
수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들이
저를 하나님 곁에 더 가까이 나오도록 하시기 위해
깨닫게 해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일어난 일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이제는 그분들이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이전에는 언제나 나는
손해와 피해를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저는 아들 영빈이의
학교폭력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
무언가 오해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문제에 눈이 가려져
내 아이가 얼마나 힘들고
벼랑 끝에 서 있는 마음이었을까를 보지 못하고
아이를 다그치며 잘못했으면 잘못한 대로
죄의 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을 하며
아이를 향해 웃어주지 못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건 속에서 분노하며
똑바로 행동하지 못하고 매일 밤늦게 돌아다녀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친구 좀 가려서 사귀라며
아이를 정죄하고
매몰차게 말로 억압을 하고
아이를 몰아세웠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자해하며
자신의 뺨이 피멍이 들도록
때리고 자책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속으로 도대체 해줄 거 다 해주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자살을 하겠다고
새벽에 집을 나가고 학교 등교 후에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고,
자살을 하려고 한 이유가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가족들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아이는 학교 근처에만 가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불안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 이틀이 지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아이는 방 안에만 있습니다.
화장실도 사람이 없을 때만 갑니다.
그나마 교회에 가야
아이가 아무런 일 없는 아이처럼
행동하며 웃기도 합니다.
김정옥 집사의 고백(2, THNIK양육)
저는 어린시절 집은 가난했지만
공주님으로 자랐습니다.
남편과 동거를 시작하기 전날까지도
친정엄마는 제게 ‘공주님 식사하세요’ 하시며
자고 있는 저에게 상을 차려 가져다주시고,
결혼 후에도 전화를 끊으실 때면
‘공주님 사랑해’ 하고 말해 주셨습니다.
저는 친정엄마에게 항상 공주였습니다.
돈을 벌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저였지만
집에서는 공주님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교만했을까요?
돈으로 다 해결하려는 저의 교만 때문에
하나님은 김종현 집사를 만나게 하셔서
물질 고난을 겪고,
저는 하루아침에 공주님에서
시댁의 몸종으로 신분이 변한 것 같은
상황을 맞이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죄를 알지 못하고
남편에게 늘 불평, 불만을 쏟아내고
남편의 기를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안에 말씀이 없고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니
말씀을 듣고 흘려버리며 세월을 보내고,
물질을 우상 삼아 돈을 버느라
신앙생활을 쉬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제가 양육을 받으며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피해망상과 열등감을 포장하려는
교만의 죄들을 거룩한 척
저를 포장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건 내 삶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는데
내가 당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양육을 통해 그런 고난에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저를 위해
수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들이
저를 하나님 곁에 더 가까이 나오도록 하시기 위해
깨닫게 해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일어난 일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이제는 그분들이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이전에는 언제나 나는
손해와 피해를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저는 아들 영빈이의
학교폭력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
무언가 오해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문제에 눈이 가려져
내 아이가 얼마나 힘들고
벼랑 끝에 서 있는 마음이었을까를 보지 못하고
아이를 다그치며 잘못했으면 잘못한 대로
죄의 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을 하며
아이를 향해 웃어주지 못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건 속에서 분노하며
똑바로 행동하지 못하고 매일 밤늦게 돌아다녀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친구 좀 가려서 사귀라며
아이를 정죄하고
매몰차게 말로 억압을 하고
아이를 몰아세웠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자해하며
자신의 뺨이 피멍이 들도록
때리고 자책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속으로 도대체 해줄 거 다 해주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자살을 하겠다고
새벽에 집을 나가고 학교 등교 후에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고,
자살을 하려고 한 이유가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가족들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아이는 학교 근처에만 가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불안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 이틀이 지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아이는 방 안에만 있습니다.
화장실도 사람이 없을 때만 갑니다.
그나마 교회에 가야
아이가 아무런 일 없는 아이처럼
행동하며 웃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