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정 전도사의 고백(2)
본문의 1절에서 2절 말씀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수년간 말씀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며 직분을 섬기고 헌신했지만,
말씀처럼 말씀인 신령한 젖을 사모하지 않으니
티 나지 않게 이중적인 모습으로
가정과 교회 안팎에서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일삼게 되었고,
저는 자라지 못한 채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큐티 말씀과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몇 번의 고비를 넘겨 다행히 이혼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과 친정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밀알중보기도회 시간에
“하나님 제 인생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데
제가 하나님을 믿는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데도 제가 하나님을 왜 믿고 있을까요..”
라고 탄식하며 낮게 읊조리듯 기도하게 되었고,
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제 마음 가운데
오늘 제가 큐티 나눔 본문에 붙여보았던 제목처럼
“내가 널 선택했으니까”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뚜렷이 전해졌습니다.
그 말씀이 전해지자마자 저는 모든 의문이 풀어지게 되었고
이후
“왜 나를 선택하셨을까?”라는 의문에도
성령님은 친절하시게도
“네가 고아와 같아서”라는
마음을 또다시 전해주셨습니다.
철저하게 버려져서 죽어도 아무도 알지 못하고
슬퍼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보배롭다고 하시는데
너무 기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버려진 것이,
내가 고아와 같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많은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길가에 버려져 발에 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죽은 돌과 같은 인생이라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귀한 전도사의 직분까지 허락해 주셨으니,
이보다 더 보배로운 산 돌의 인생이 어디 있나 싶습니다.
9절 말씀에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나를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시며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아직도 여전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에게는
버려지는 돌이 되지 않으려 애씁니다.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하시며
저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셨는데
저는 틈만 나면 신령한 젖과 같은
말씀을 멀리하고 말씀을 멀리하니
버려짐을 당할 낌새를 조금이라도 느끼면 참지 못합니다.
아기들같이 젖을 사모해야 하는데
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제 인격과 성품으로 해내려고
아등바등 애씁니다.
그러니 또다시 악독과 기만 비방하는 말이 올라옵니다.
며칠 전에 남편과 오랜만에 다투다가
남편이 저의 악독한 말을 듣고
“너 이럴 거면 사역을 왜 하냐”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첫째 아이가 제게
“엄마 전도사님 되더니 너무 예민해졌어"
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모두 제가 들어야 할 말들이겠지요.
전도사 임명장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텐데
벌써 이런 말을 듣고 있는 저는 지독한 죄인입니다.
성도님들에게도 버림당하지 않고 인정받고 싶고
남편과 자녀에게도 버려지고 싶지 않아
말씀 대신 내 노력과 성품으로 줄타기하며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사명을
자꾸만 잊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저의 적용은
되어지는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내 성품과 노력으로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일이 벌어지면
빨리 대응하고 해결점을 찾아야 덜 불안한데
한 템포 늦추는 적용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아름다운 덕인 복음을
가정과 교회에서 전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성윤정 전도사의 고백(2)
본문의 1절에서 2절 말씀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수년간 말씀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며 직분을 섬기고 헌신했지만,
말씀처럼 말씀인 신령한 젖을 사모하지 않으니
티 나지 않게 이중적인 모습으로
가정과 교회 안팎에서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일삼게 되었고,
저는 자라지 못한 채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큐티 말씀과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몇 번의 고비를 넘겨 다행히 이혼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과 친정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밀알중보기도회 시간에
“하나님 제 인생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데
제가 하나님을 믿는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데도 제가 하나님을 왜 믿고 있을까요..”
라고 탄식하며 낮게 읊조리듯 기도하게 되었고,
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제 마음 가운데
오늘 제가 큐티 나눔 본문에 붙여보았던 제목처럼
“내가 널 선택했으니까”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뚜렷이 전해졌습니다.
그 말씀이 전해지자마자 저는 모든 의문이 풀어지게 되었고
이후
“왜 나를 선택하셨을까?”라는 의문에도
성령님은 친절하시게도
“네가 고아와 같아서”라는
마음을 또다시 전해주셨습니다.
철저하게 버려져서 죽어도 아무도 알지 못하고
슬퍼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보배롭다고 하시는데
너무 기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버려진 것이,
내가 고아와 같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많은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길가에 버려져 발에 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죽은 돌과 같은 인생이라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귀한 전도사의 직분까지 허락해 주셨으니,
이보다 더 보배로운 산 돌의 인생이 어디 있나 싶습니다.
9절 말씀에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나를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시며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아직도 여전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에게는
버려지는 돌이 되지 않으려 애씁니다.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하시며
저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셨는데
저는 틈만 나면 신령한 젖과 같은
말씀을 멀리하고 말씀을 멀리하니
버려짐을 당할 낌새를 조금이라도 느끼면 참지 못합니다.
아기들같이 젖을 사모해야 하는데
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제 인격과 성품으로 해내려고
아등바등 애씁니다.
그러니 또다시 악독과 기만 비방하는 말이 올라옵니다.
며칠 전에 남편과 오랜만에 다투다가
남편이 저의 악독한 말을 듣고
“너 이럴 거면 사역을 왜 하냐”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첫째 아이가 제게
“엄마 전도사님 되더니 너무 예민해졌어"
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모두 제가 들어야 할 말들이겠지요.
전도사 임명장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텐데
벌써 이런 말을 듣고 있는 저는 지독한 죄인입니다.
성도님들에게도 버림당하지 않고 인정받고 싶고
남편과 자녀에게도 버려지고 싶지 않아
말씀 대신 내 노력과 성품으로 줄타기하며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사명을
자꾸만 잊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저의 적용은
되어지는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내 성품과 노력으로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일이 벌어지면
빨리 대응하고 해결점을 찾아야 덜 불안한데
한 템포 늦추는 적용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아름다운 덕인 복음을
가정과 교회에서 전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