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은 집사의 고백
나훔 2:8-13의 말씀으로 큐티나눔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어디로 도망치고 있습니까?
공허하고 황폐하여진 내 삶을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다시 채우고 있습니까?
내가 자랑하고 의지하던 사자굴은 무엇입니까?
8절과 9절의 말씀처럼
예로부터 물이 모인 곳같이 금과 은,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한
니느웨 같던 저희 가정은 10절 말씀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의 말씀처럼
한숨과 절망 두려움으로 눈물이 마르지 않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10절과 11절의 말씀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말씀처럼 부와 안정 그리고 남편을
무너지지 않을 나의 사자굴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교만과 악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하나님도 열심히 믿고 세상의 소망도 열심히 믿으며
두 주인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정경제의 위기를 직감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기로 작정하였지만
혹여라도 안 나가던 새벽예배를 나오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이런 생각을 하느라 며칠을 고민만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앞에서
영과 육이 병들어 갔고,
깊은 우울증과 대인기피로 무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깊은 한숨을 듣고 있으면 심장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아서
한 공간에 둘이 있는 것을 피하고 싶었고
실제로 남편의 깊은 한숨은 저에게 두려움과 공포였습니다.
이렇듯 무너지는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내 환경과 경험을 의지하며 문제해결에만 집중하느라
많은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도망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두손 두발 들고 회개하고 매달려 기도하는 것만이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임을
큐티묵상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다 막혀 있는 것 같고
죽을 것 같지만 절대 죽이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말씀 붙잡고 인내하는 자에게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예배시간이면 너무 많이 우는 남편이
너무 민망해서 적당히 울라고 하고
또 부족한 모습이 보이면 왜 더 열심히 하지 않냐며
그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정을 사자굴의 안락함으로
영원히 지켜줄 것만 같던 남편이 무너지는 모습은
저의 체면을 깎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깨달음을 통해
이중적이고 바리새인과 같은 저를
하나님은 철저히 회개시키셨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을 닫고 남편의 질서에 순종하며
허락하신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난을 잘 당하며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만나는 삶을 살았더니
2025년은 큐티로 살아난 기적과 같은 한 해였습니다.
전도사님과 함께하는
오전 큐티기도회와 구역예배를 통해
말씀으로 깨달은 저의 민낯과 연약함을 낱낱이 고백하고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임을 깨달으니
두려움에 전전긍긍하던 저에게
기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쓸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며
사랑으로 정성껏 돌보아 주신 공동체의 사랑으로
저의 영과 육이 살아나고
그 힘으로 가정에서 말씀의 빛을 잘 비취었더니
가족 모두 영과 육의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 환경은 그대로인데 집안 공기가 달라졌어.”
이것이야말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기적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고 낙심될 때도 너무 많았으며
예전의 사자굴의 안락을 추억하며
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은 아주 신실하시고 섬세하신 방법으로
저희 가정을 돌보아 주셨고,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매일 고백하게 하시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의 적용은
‘잘 듣는 자가 되겠습니다’입니다.
연약한 저의 나눔을 잘 들어주시며
사랑으로 돌보아 주셨던 그 사랑으로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
마음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잘 듣겠습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시며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고지은 집사의 고백
나훔 2:8-13의 말씀으로 큐티나눔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어디로 도망치고 있습니까?
공허하고 황폐하여진 내 삶을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다시 채우고 있습니까?
내가 자랑하고 의지하던 사자굴은 무엇입니까?
8절과 9절의 말씀처럼
예로부터 물이 모인 곳같이 금과 은,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한
니느웨 같던 저희 가정은 10절 말씀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의 말씀처럼
한숨과 절망 두려움으로 눈물이 마르지 않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10절과 11절의 말씀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말씀처럼 부와 안정 그리고 남편을
무너지지 않을 나의 사자굴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교만과 악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하나님도 열심히 믿고 세상의 소망도 열심히 믿으며
두 주인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정경제의 위기를 직감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기로 작정하였지만
혹여라도 안 나가던 새벽예배를 나오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이런 생각을 하느라 며칠을 고민만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앞에서
영과 육이 병들어 갔고,
깊은 우울증과 대인기피로 무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깊은 한숨을 듣고 있으면 심장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아서
한 공간에 둘이 있는 것을 피하고 싶었고
실제로 남편의 깊은 한숨은 저에게 두려움과 공포였습니다.
이렇듯 무너지는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내 환경과 경험을 의지하며 문제해결에만 집중하느라
많은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도망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두손 두발 들고 회개하고 매달려 기도하는 것만이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임을
큐티묵상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다 막혀 있는 것 같고
죽을 것 같지만 절대 죽이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말씀 붙잡고 인내하는 자에게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예배시간이면 너무 많이 우는 남편이
너무 민망해서 적당히 울라고 하고
또 부족한 모습이 보이면 왜 더 열심히 하지 않냐며
그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정을 사자굴의 안락함으로
영원히 지켜줄 것만 같던 남편이 무너지는 모습은
저의 체면을 깎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깨달음을 통해
이중적이고 바리새인과 같은 저를
하나님은 철저히 회개시키셨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을 닫고 남편의 질서에 순종하며
허락하신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난을 잘 당하며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만나는 삶을 살았더니
2025년은 큐티로 살아난 기적과 같은 한 해였습니다.
전도사님과 함께하는
오전 큐티기도회와 구역예배를 통해
말씀으로 깨달은 저의 민낯과 연약함을 낱낱이 고백하고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임을 깨달으니
두려움에 전전긍긍하던 저에게
기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쓸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며
사랑으로 정성껏 돌보아 주신 공동체의 사랑으로
저의 영과 육이 살아나고
그 힘으로 가정에서 말씀의 빛을 잘 비취었더니
가족 모두 영과 육의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 환경은 그대로인데 집안 공기가 달라졌어.”
이것이야말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기적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고 낙심될 때도 너무 많았으며
예전의 사자굴의 안락을 추억하며
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은 아주 신실하시고 섬세하신 방법으로
저희 가정을 돌보아 주셨고,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매일 고백하게 하시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의 적용은
‘잘 듣는 자가 되겠습니다’입니다.
연약한 저의 나눔을 잘 들어주시며
사랑으로 돌보아 주셨던 그 사랑으로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
마음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잘 듣겠습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시며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